★(부산일보 9.11 25면 사람)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 일하니 정말 잘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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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9-16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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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긍정 경영’의 아이콘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는 정신으로 일하니 정말 잘돼”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매일 아침 전 직원들과 함께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 구호를 외치는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 그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안 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경현 기자 view@
매일 아침 전 직원들과 함께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 구호를 외치는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 그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안 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경현 기자 view@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 부산 중구 해관로 65 은산해운항공㈜의 양재생(61) 회장을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구호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양 회장은 은산해운항공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 구호를 입에 달고 살기 때문이다. 점층적인 동어반복의 단순한 뜻을 담고 있어 쉽게 기억되는 데다 흥얼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 따라하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양 회장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30대 중반에 국제 복합운송업을 창업, 불과 26년 만에 연 매출액 3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을 일궈 냈다. 그 밑바닥에는 바로 ‘하면 된다’는 긍정 마인드가 자리하고 있다. 살면서 한 번도 ‘안 된다’는 말을 써 본 적이 없다는 양 회장. 불교신자인 그가 좋아하는 경전 구절 또한 ‘심상사성(心想事成)’(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국제복합운송업체 은산해운항공 외
은산컨테이너터미널 등 6개 계열사 운영
연매출 3000억 원 육박하는 중견기업
양 회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긍정 경영’에 대해 들어 봤다.
1993년 18년여 다니던 직장생활 접고
빌린 자본금 3000만 원 발판 삼아 창업
신용 덕분에 IMF 외환위기 때 급성장
14세 때 부친 작고, 소년가장 처지 돼
책임감 생기며 긍정 정신 갖기로 다짐
매일 업무 시작 전 “된다” 구호 외쳐
성공 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적극 실천
부부·모친 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골프채 잡아 본 적 없고 술도 안 마셔
일하는 게 재밌어 일이 취미이자 오락
-지난달 한국무역학회가 시상하는 ‘무역진흥대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은?
“글쎄, 해상·항공운송을 활발하게 하고 컨테이너 터미널과 수출포장 사업 등으로 수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적기 운송을 해 줌으로써 상품의 국제 경쟁력 제고에 일조했다는 의미로 주는 상으로 생각한다.”
양 회장은 그동안 대통령 석탑산업훈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대한민국 해양대상,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 표창, 바다의 날 산업포장 등 워낙 많은 상과 훈포장을 받은 터라 상장 하나 더 보탠 데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 것 같았다.
2008년 은산컨테이너터미널㈜ 개장식에서.
2008년 은산컨테이너터미널㈜ 개장식에서.
-은산해운항공 외 계열사를 소개해 달라.
“국제 복합운송(포워딩) 업체인 은산해운항공이 주력 기업이고 은산컨테이너터미널㈜, 은산수출포장㈜, 은산산업개발㈜, 은산기업㈜, 은산 바이오㈜, 동서콘솔㈜ 등이 있다.”
은산 그룹은 전 계열사를 통틀어 350여 명의 종업원이 있으며 지난해 기준 3000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매출을 올렸다. 양 회장은 “대기업을 제외하고 중소·중견기업 중에서 우리 회사가 규모면에서 전국 1등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경기부진과 한·일 갈등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은 없나?
“아무래도 영향이 없지 않다. 올해 약간 부진이 예상되지만 임직원들이 일치단결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3다. 평소 열심히 달려 온 사람은 위기에 넘어지지 않는다. 위기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그의 말대로 은산해운항공은 숱한 기업들이 도산한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 오히려 급성장을 한 경험이 있다. 평소에 차곡차곡 쌓아 온 기업 신용 덕분에 물량이 은산 쪽으로 몰린 것이다.
-은산바이오는 처음 들어보는 기업인데?
“지난 5월 설립한 법인이다. 유산균(제품명 이피미 바이오프로) 식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시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구전홍보만으로 석달여 만에 3500박스(박스당 12만 원)나 팔렸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초 어떻게 '은산'을 창업하게 됐나?
“1993년 18년 9개월간 다니던 국적선사(동남아해운)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창업했다. 당시 은행에서 빌린 자본금 3000만 원을 발판으로, 종업원 5명으로 시작했다.”
함양종고 졸업 후 곧바로 부산에 와 취업한 양 회장은 배움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직장생활 동안에 전문대 야간반을 다녔고, 다시 방송통신대 진학 후 동아대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회사 대표가 된 뒤에는 동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창업 26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둔 비결은?
“큰 성공인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26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 기간에 은산을 이 정도밖에 못 키웠나, 오히려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낀다. 더 열심히 했으면 좀 더 크고 안정적인 회사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기자는 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성공 비결’을 말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반대의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 “그래도 객관적으로 보면 성공한 기업가가 아닌가. 독자들을 위해 성공 비결을 알려 달라”고 간청하자, 양 회장은 한참 뜸을 들이다 말문을 열었다.
“평범한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화주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어떤 난관이 있어도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화주가 이득을 보고 돈을 벌면 은산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된다, 된다, 잘 된다, 더 잘된다’는 긍정 정신으로 전 직원들이 일하다 보니, 정말 잘 되더라.”
은산의 전 직원들은 하루의 업무 시작 전에 양 회장과 함께 ‘된다…’ 구호를 목청껏 외친다. 이와 함께 지난해 양 회장이 직접 노랫말을 지어 만든 사가(社歌)(작곡 정풍송)도 합창한다. 양 회장은 26년간 준비해 만든 사가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양 회장이 직접 노랫말을 붙인 ‘은산 사가‘ 음반.
양 회장이 직접 노랫말을 붙인 ‘은산 사가‘ 음반.
-긍정 마인드를 가진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내 삶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가슴이 짠해서 참….”
인터뷰 내내 쾌활하고 웃음기 가득하던 양 회장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꺼냈다. 양 회장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평생 논밭 한 뙈기 가진 적이 없었다. 늘 소작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양 회장이 14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2남 3녀의 장남이었던 양 회장은 졸지에 ‘소년가장’ 처지가 됐다. 장남으로서 어깨가 몹시 무거웠다.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이 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어린 나이에 삶의 소명의식이 생겼으니, 존재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때부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맘을 먹었다.”
물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젖이 되듯, 고난은 그에게서 긍정과 의지의 꽃으로 피어났다.
-고등학교는 어떻게 다녔나?
“1,2학년 때는 ‘생계 유지 곤란자’로 학비를 면제받았다. 그런데 3학년 때는….”
양 회장은 이 대목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몇 분간 인터뷰가 중단됐다.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기자에게 평생 가슴에 담아 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오프더레코드’(보도 유예)를 주문했다.
“가난은 정말 무섭더라”고 토로한 양 회장. 그는 사업으로 성공하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적극 실천해 왔다.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부부가 가입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부의금으로 어머니를 ‘아너’에 가입시키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나보다 어려운 사람 잘 챙겨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그게 양 회장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1년 동아대 석사학위 취득 시 어머니와 함께.
1991년 동아대 석사학위 취득 시 어머니와 함께.
특히 고향에 대한 그의 무한 애정은 소문이 나 있다. 재부함양군 향우회장 당시 1억 원을 기탁하’는 등 3억 원을 모아 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명절 등에는 고향의 농산물을 구입해 직원들과 지인들에게 선물해 오고 있다. 수십 년째 스승의날 등에는 초·중·고 은사들께 안부와 함께 선물을 전하고 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보은하는 ‘뿌리 의식’이야말로 양 회장의 경영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인 셈.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정 탓에 그에게는 숱한 단체들의 직함도 주어졌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젊은이들은 땀을 흘려야 한다. 일반 직장인보다 두세 배 더 일하겠다는 정신이 없는 사람은 창업을 하면 안 된다. 평생 노동을 하겠다는 각오로 꾸준하게 밀어붙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아직까지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는 양 회장. 그는 골프나 술 마시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일이 곧 취미이자 오락이라고.
향후 은산의 비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물류업을 시작했으니 국내에 머물지 않고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 기업을 더 튼튼하게 해서 먼 훗날 대기업으로 가는 길목을 다지고 싶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지난 5월 스웨덴에서 내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할 당시 모습.
지난 5월 스웨덴에서 내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할 당시 모습.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에 일조한 ‘긍정 철학’
양재생 회장은 부산탁구협회 회장을 9년째 맡고 있다. 2010년 유남규 현정화 등 부산 출신 탁구인들의 간청에 2년의 잔여 임기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수락했지만 하다 보니 3대 연속 회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양 회장은 내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3월 22~29일) 개최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95년 한국 탁구 사상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로 한국의 잔치, 나아가 세계의 잔치다. 잔칫집에는 손님이 많이 와야 하고, 오신 손님이 만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회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양 회장은 2013년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와 지난 7월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 이어 세계탁구선수권을 부산에서 개최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하면 된다’는 그의 ‘긍정 철학’이 스포츠에서도 그대로 통하고 있는 셈이다.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는 정신으로 일하니 정말 잘돼”
윤현주 기자 hohoy@busan.com
매일 아침 전 직원들과 함께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 구호를 외치는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 그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안 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경현 기자 view@
매일 아침 전 직원들과 함께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 구호를 외치는 양재생 은산해운항공㈜ 회장. 그는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안 된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경현 기자 view@
‘된다, 된다, 잘된다, 더 잘된다.’ 부산 중구 해관로 65 은산해운항공㈜의 양재생(61) 회장을 한 번이라도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구호가 낯설지 않을 것이다. 양 회장은 은산해운항공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 구호를 입에 달고 살기 때문이다. 점층적인 동어반복의 단순한 뜻을 담고 있어 쉽게 기억되는 데다 흥얼거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자꾸 따라하게 되는 묘한 중독성이 있다.
양 회장은 지독한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해야 했다. 이후 30대 중반에 국제 복합운송업을 창업, 불과 26년 만에 연 매출액 3000억 원에 육박하는 중견기업을 일궈 냈다. 그 밑바닥에는 바로 ‘하면 된다’는 긍정 마인드가 자리하고 있다. 살면서 한 번도 ‘안 된다’는 말을 써 본 적이 없다는 양 회장. 불교신자인 그가 좋아하는 경전 구절 또한 ‘심상사성(心想事成)’(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국제복합운송업체 은산해운항공 외
은산컨테이너터미널 등 6개 계열사 운영
연매출 3000억 원 육박하는 중견기업
양 회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나 ‘긍정 경영’에 대해 들어 봤다.
1993년 18년여 다니던 직장생활 접고
빌린 자본금 3000만 원 발판 삼아 창업
신용 덕분에 IMF 외환위기 때 급성장
14세 때 부친 작고, 소년가장 처지 돼
책임감 생기며 긍정 정신 갖기로 다짐
매일 업무 시작 전 “된다” 구호 외쳐
성공 후 노블레스 오블리주 적극 실천
부부·모친 다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
골프채 잡아 본 적 없고 술도 안 마셔
일하는 게 재밌어 일이 취미이자 오락
-지난달 한국무역학회가 시상하는 ‘무역진흥대상’을 수상했는데 소감은?
“글쎄, 해상·항공운송을 활발하게 하고 컨테이너 터미널과 수출포장 사업 등으로 수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적기 운송을 해 줌으로써 상품의 국제 경쟁력 제고에 일조했다는 의미로 주는 상으로 생각한다.”
양 회장은 그동안 대통령 석탑산업훈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대한민국 해양대상, 부총리겸 교육부 장관 표창, 바다의 날 산업포장 등 워낙 많은 상과 훈포장을 받은 터라 상장 하나 더 보탠 데 대해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 것 같았다.
2008년 은산컨테이너터미널㈜ 개장식에서.
2008년 은산컨테이너터미널㈜ 개장식에서.
-은산해운항공 외 계열사를 소개해 달라.
“국제 복합운송(포워딩) 업체인 은산해운항공이 주력 기업이고 은산컨테이너터미널㈜, 은산수출포장㈜, 은산산업개발㈜, 은산기업㈜, 은산 바이오㈜, 동서콘솔㈜ 등이 있다.”
은산 그룹은 전 계열사를 통틀어 350여 명의 종업원이 있으며 지난해 기준 3000억 원에 조금 못 미치는 매출을 올렸다. 양 회장은 “대기업을 제외하고 중소·중견기업 중에서 우리 회사가 규모면에서 전국 1등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경기부진과 한·일 갈등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은 없나?
“아무래도 영향이 없지 않다. 올해 약간 부진이 예상되지만 임직원들이 일치단결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고 노력 중이3다. 평소 열심히 달려 온 사람은 위기에 넘어지지 않는다. 위기 속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기 마련이다.”
그의 말대로 은산해운항공은 숱한 기업들이 도산한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 오히려 급성장을 한 경험이 있다. 평소에 차곡차곡 쌓아 온 기업 신용 덕분에 물량이 은산 쪽으로 몰린 것이다.
-은산바이오는 처음 들어보는 기업인데?
“지난 5월 설립한 법인이다. 유산균(제품명 이피미 바이오프로) 식품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시민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뜻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구전홍보만으로 석달여 만에 3500박스(박스당 12만 원)나 팔렸다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당초 어떻게 '은산'을 창업하게 됐나?
“1993년 18년 9개월간 다니던 국적선사(동남아해운) 월급쟁이 생활을 접고 창업했다. 당시 은행에서 빌린 자본금 3000만 원을 발판으로, 종업원 5명으로 시작했다.”
함양종고 졸업 후 곧바로 부산에 와 취업한 양 회장은 배움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다. 직장생활 동안에 전문대 야간반을 다녔고, 다시 방송통신대 진학 후 동아대 학부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회사 대표가 된 뒤에는 동아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창업 26년 만에 큰 성공을 거둔 비결은?
“큰 성공인지, 오히려 반문하고 싶다. 26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이 기간에 은산을 이 정도밖에 못 키웠나, 오히려 부족함과 아쉬움을 느낀다. 더 열심히 했으면 좀 더 크고 안정적인 회사를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기자는 순간 당황했다. 당연히 ‘성공 비결’을 말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 반대의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 “그래도 객관적으로 보면 성공한 기업가가 아닌가. 독자들을 위해 성공 비결을 알려 달라”고 간청하자, 양 회장은 한참 뜸을 들이다 말문을 열었다.
“평범한 말이지만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정직해야 한다. 무엇보다 나는 언제나 긍정적이다. 화주에게 애로사항이 있으면 어떤 난관이 있어도 해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화주가 이득을 보고 돈을 벌면 은산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된다, 된다, 잘 된다, 더 잘된다’는 긍정 정신으로 전 직원들이 일하다 보니, 정말 잘 되더라.”
은산의 전 직원들은 하루의 업무 시작 전에 양 회장과 함께 ‘된다…’ 구호를 목청껏 외친다. 이와 함께 지난해 양 회장이 직접 노랫말을 지어 만든 사가(社歌)(작곡 정풍송)도 합창한다. 양 회장은 26년간 준비해 만든 사가라며 자랑스러워 했다.
양 회장이 직접 노랫말을 붙인 ‘은산 사가‘ 음반.
양 회장이 직접 노랫말을 붙인 ‘은산 사가‘ 음반.
-긍정 마인드를 가진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내 삶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이런 얘기를 하면 가슴이 짠해서 참….”
인터뷰 내내 쾌활하고 웃음기 가득하던 양 회장의 안색이 순간 변했다. 잠시 숨을 고른 그는 자신의 어릴 적 얘기를 꺼냈다. 양 회장의 집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평생 논밭 한 뙈기 가진 적이 없었다. 늘 소작농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양 회장이 14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 2남 3녀의 장남이었던 양 회장은 졸지에 ‘소년가장’ 처지가 됐다. 장남으로서 어깨가 몹시 무거웠다. 자신이 열심히 하지 않으면 가족들이 살아가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이 된 이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 어린 나이에 삶의 소명의식이 생겼으니, 존재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때부터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고,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고 맘을 먹었다.”
물을 독사가 마시면 독이 되고 젖소가 마시면 젖이 되듯, 고난은 그에게서 긍정과 의지의 꽃으로 피어났다.
-고등학교는 어떻게 다녔나?
“1,2학년 때는 ‘생계 유지 곤란자’로 학비를 면제받았다. 그런데 3학년 때는….”
양 회장은 이 대목에서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몇 분간 인터뷰가 중단됐다.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기자에게 평생 가슴에 담아 둔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오프더레코드’(보도 유예)를 주문했다.
“가난은 정말 무섭더라”고 토로한 양 회장. 그는 사업으로 성공하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적극 실천해 왔다.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클럽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부부가 가입했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부의금으로 어머니를 ‘아너’에 가입시키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나보다 어려운 사람 잘 챙겨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그게 양 회장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1년 동아대 석사학위 취득 시 어머니와 함께.
1991년 동아대 석사학위 취득 시 어머니와 함께.
특히 고향에 대한 그의 무한 애정은 소문이 나 있다. 재부함양군 향우회장 당시 1억 원을 기탁하’는 등 3억 원을 모아 장학재단을 설립했으며, 명절 등에는 고향의 농산물을 구입해 직원들과 지인들에게 선물해 오고 있다. 수십 년째 스승의날 등에는 초·중·고 은사들께 안부와 함께 선물을 전하고 있다.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보은하는 ‘뿌리 의식’이야말로 양 회장의 경영 철학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인 셈.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거절을 잘 못하는 성정 탓에 그에게는 숱한 단체들의 직함도 주어졌다.
-창업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젊은이들은 땀을 흘려야 한다. 일반 직장인보다 두세 배 더 일하겠다는 정신이 없는 사람은 창업을 하면 안 된다. 평생 노동을 하겠다는 각오로 꾸준하게 밀어붙이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
아직까지 골프채를 잡아본 적이 없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는다는 양 회장. 그는 골프나 술 마시는 것보다 일하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일이 곧 취미이자 오락이라고.
향후 은산의 비전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물류업을 시작했으니 국내에 머물지 않고 세계로 나아가고 싶다. 기업을 더 튼튼하게 해서 먼 훗날 대기업으로 가는 길목을 다지고 싶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지난 5월 스웨덴에서 내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할 당시 모습.
지난 5월 스웨덴에서 내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할 당시 모습.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유치에 일조한 ‘긍정 철학’
양재생 회장은 부산탁구협회 회장을 9년째 맡고 있다. 2010년 유남규 현정화 등 부산 출신 탁구인들의 간청에 2년의 잔여 임기만 채운다는 생각으로 수락했지만 하다 보니 3대 연속 회장직을 수행하게 됐다.
양 회장은 내년 부산 세계탁구선수권대회(3월 22~29일) 개최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95년 한국 탁구 사상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로 한국의 잔치, 나아가 세계의 잔치다. 잔칫집에는 손님이 많이 와야 하고, 오신 손님이 만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회가 최선을 다하겠지만,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며 시민들의 협조를 당부했다.
양 회장은 2013년 아시아 탁구선수권대회와 지난 7월 코리아오픈 국제탁구대회에 이어 세계탁구선수권을 부산에서 개최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 ‘하면 된다’는 그의 ‘긍정 철학’이 스포츠에서도 그대로 통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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